영화 <실미도>는 2003년 개봉해 1108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한민국 최초로 ‘천만 관객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작품입니다. 1970년대 실존했던 684부대의 비극적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그동안 감춰져 있던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스크린에 올려 큰 충격과 함께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미도>의 역사적 배경, 주요 줄거리, 그리고 흥행과 사회적 반향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 684부대와 북파 공작원
<실미도>의 바탕은 실제 존재했던 ‘684부대’ 사건 입니다. 684부대는 1968년 1월 21일 일어난 북한의 1.21 사태(김신조 사건)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남파했고, 서울 한복판까지 침투한 이들은 국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습니다. 결국 청와대 습격은 실패했지만, 대한민국은 극도의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에 보복 차원에서 남한 정부는 북한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바로 그 임무를 맡은 것이 684부대였습니다. 이들은 사형수, 무기수, 깡패 출신 등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인물들로 구성되어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실미도에서 암살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완화되면서 작전은 무산되었고, 더 이상 필요 없어져 버린 이들은 결국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이 사건은 30년 넘게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가, 1999년과 2000년 잇따라 언론에 보도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영화 <실미도>는 이 실제 사건을 비교적 충실히 재현하며, 역사에 가려졌던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았습니다.
줄거리: 버림받은 특수부대의 비극
영화는 1968년, 각지에서 불량배와 사형수들이 납치되듯 끌려오며 시작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군트럭에 실려 서해 무인도 실미도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인간 이하의 훈련과 폭력, 그리고 “김일성을 죽이는 특공대”가 되기 위한 혹독한 교육이었습니다. 리더 격인 강인찬(설경구) 은 한때 조폭이었지만, 점차 동료들을 이끌며 훈련을 버텨내게 합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고 반목하던 부대원들은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으며 끈끈한 전우애를 쌓아가죠. 이들은 마침내 작전을 수행할 준비를 마치고, 김포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 갑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합니다. 남북 평화 무드가 조성되며 정부가 계획을 철회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목숨 걸고 준비했던 작전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이제는 군사기밀 누설을 막기 위해 이들을 ‘처리’하라는 명령까지 내려옵니다. 결국 강인찬과 동료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살려둘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들은 군 트럭을 탈취해 서울로 향하고, 시내로 진입한 뒤 군과 경찰의 총격을 받으며 하나 둘 쓰러져갑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그들의 처절한 저항과 죽음을 보여주며, “누구를 위한 애국이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흥행과 사회적 반향
<실미도>는 개봉과 동시에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되는 이 영화에 더 큰 충격을 받았죠. 당시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군사 독재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단순한 영화적 재미를 넘어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2004년 1월 31일, <실미도>는 한국 영화 최초로 관객 1000만 명 돌파라는 역사를 썼습니다. 이는 한국 영화가 산업으로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상징이었고, 이후 천만 영화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또한 영화가 흥행하며 언론과 학계에서도 684부대에 대한 재조명과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끝내 2006년에는 국가가 684부대 생존자 및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와 배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실미도>는 단순한 흥행작이 아닌, 한국 사회가 군사정권 시절의 인권 유린과 폭력성을 직면하게 만든 영화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 영화가 다시 방영될 때면 많은 이들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2025년 현재 <실미도>는 OTT와 TV 특선에서 꾸준히 상영되며 세대를 넘어 다시금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라 해 놓고, 필요 없으니 없애버린 이 잔혹한 역사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실미도>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을 영화라는 매개로 묵직하게 남겨두었습니다.